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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무이산-수태산-향로봉(문수암-무이산-약사전-수태산-향로봉-상두바위-운흥사) - 2023.12.02

T-가라지 2023. 12. 6. 13:23

문수암 전경 1..좌측 멀리 거류산. 벽방산....통영 미륵산..

 

문수암 전경 2..오른쪽.. 보현암 약사여래대불 넘어 좌이산..

 

무이산 정상 전경 1...눈부신 자란만과 오른쪽 사량도..좌이산..

 

무이산 정상 전망암에서..

 

향로봉 갈림 마당바위 근처 소나무전망암터....

 

향로봉 아래 전망바위에서..왼쪽 아래 가야할 상두바위...비로봉..

 

상두바위에서의 전경 1..지나온 향로봉에서 백암산으로 흘러내린 나긋한 능선..

 

상두바위에서의 전경 2..오른쪽 가야할 비로봉..

 

비로봉에서의 전경 1...왼쪽 사천 와룡산...오른쪽 향로봉 ( 고성 와룡산 )..

 

비로봉에서의 전경 2..  사천 와룡산 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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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무이산-수태산-향로봉(문수암-무이산-약사전-수태산-향로봉-상두바위-운흥사)  :  무선저수지~이련정가든~산들머리~문수암전망대~천불전~문수전~무이산~편백숲~포장도갈림~약사여래대불~약사전 일주문~산길갈림~전망바위~마당바위~갈림합류점~중계탑~척번정갈림~수태산~전망바위~전망바위~수태재(임도)~415봉~355봉~학동치~임도탈(향로봉들머리)~임도~마당바위~소나무전망암~삼거리무명암봉~쉼터 삼거리~향로봉~전망바위~애향교~상두바위~새바위~전망바위~비로봉~전망바위~신선대~낙서암~천진암~운흥사대웅전~운흥사일주문(불이문)

 

 

고성 무이산-수태산-향로봉(문수암-무이산-약사전-수태산-향로봉-상두바위-운흥사)  gpx track  : 

2023-12-02 고성 무이산-수태산 (무이산-약사대불-수태산-향로봉-상두바위-신선대).gpx
0.24MB

 

 

 

※ 산행거리  :  약 12.8km..   산행시간  :  약 5시간 45분..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그말이 맞는가 보다..

걸음 중 아주 약간의 혼란이 있었던 고성 와룡산(향로봉)에 위치한 [상두바위]의 위치나 이름유래에 대해서.. 위치야 표기된 산행 안내도에 표기되어 논란의 소지가 해소 되었다 치지만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어디를 뒤적거려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던 터라..고성군청문화관광부..하이면면사무소..와룡리이장님..을 거쳐 마침내 하이 애향회 창립맴버 셨다는 삼천포 xxx건강원을 운영하시는 사장님과 어렵게 연결된  통화에서...이러쿵저러쿵 상두바위에 얽힌 사연들을 들춰내고야 만다..

[상두바위는..아주 오래전 대홍수시절 배를 묶던 산꼭지에 자리한 웅장한 바위덤...그래서..산두(山頭)라는 이름이 변해서 상두바위로 불리거나...향로봉이 부처님 온화한 미소 배인 산이라 불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 ( 예) 상왕봉..)에서 비롯된 이름일수도 있고..세월이 지나 멀리서 보면 상투 모양으로 비치기도 한대서 상투바위라 불리던 넘이 다시 상두바위로 변했을수도 있지만 그건 좀 아닌것 같고..] 

아못거나 어디선가 본듯한 상두총각에 관련된 이야기는 언급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분 역시 정확한 유래를 콕...찝어 설명 못하시는 지라...

애고~....이만하면 됐지...다만 궁금했을뿐..그깟 이름이 무에 중요한 거라고...ㅎ

(암튼 친절하게 답변주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인사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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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아래....무선저수지 이르는 작은 오솔길에..

 

아직 남은 가을이 배시시 낡은 웃음을 짓고 있더군..

 

무선저수지에 숨어드는 초록빛 반영을 마주하며..

 

본 걸음전 호흡고르기 다담바시..

 

버스가 정차했던 들머리 삼거리..

 

민가 포장농로 따르는 동안..

 

오호...요넘 보소......구여비..^^

 

실제 산 들머리..

 

고만고만 오름산길..

 

나이들어 이미 탈이 나버린 무릎...얼루고 달래며..

 

눈앞 조오기...문수암..

 

먼저...청담대종사사리탑비와 연화좌불 온화한 미소가 앉은 전망대에 올라..

 

다도해 [자란만] 눈부신 물빛을 향해 덤덤한 어울림 한번..

 

발아래 조금뒤 걸음둘 보현암 약사전 약사여래대불께도 눈인사 먼저 두고..

 

천불전 앞 전망터에서도 무던한 손짓 한번 더..

 

여기서는.. 비치는 약사여래불 뒤 좌이산이나..

 

사량도...수우도 등 봉긋한 다도해 섬자락 품새가 한눈에 성큼..

 

문수전..한때 청담스님의 수양 토굴터 였다는 문수암..

 

바위 벼랑 좁은 공간에 새단장 말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인 문수암은 고성군상리면 무선리 무이산에 있는 암자로서 신라 성덕왕 5년(서기 706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 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산명이 수려하여 삼국시대부터 해동의명승지로 유명하였으며 특히 화랑도 전성시대에 국선 화랑들이 이 산에서 심신을 연마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고, 일반 신도들의 성금으로 1973년에 이 절에서 수도한 이청담(李靑潭)의 사리를 봉안하여 세운 청담 대종사 사리탑이 있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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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산 문수암

 

                                  / 황  동  규

 

저 만 쌍의 눈을 뜨고 깜빡이는 남해 바다

이처럼 한눈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

입구의 어두운 동백들 때문일까,

청담이 살다 관뒀다는 기호, 사리탑에서 내려다보면

언젠가 시력 끊겨도 몇 년은 계속 보일

저 환한 자란만(紫蘭灣), 떠도는 저 배들, 저 부푼 구름들, 저 잔물결들

자세히 보면 자란섬 뒤로

나비섬, 누운섬, 떠다니는 섬들도 있다.

청담 스님이 슬쩍 자리를 비워준다 해도

감을래야 감을 수 없는 이곳에 눈을 파묻지는 않으리.

뒤에 문득 기척 있어

동백이 떨어진다.

동백 뒤에 청담이 나오면 청담을…

바다로 해가 뛰어들고

섬들의 겨드랑이가 온통 빛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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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각 옆 샛길따라 종종걸음 보태면..

 

무이산 정상..

 

사방팔방..꿈틀대는 고성의 산하와 눈부신 다도해 물빛이 아롱지는 이곳에서..

 

오래된 습관...우리네 애띤 퐁당거림..

 

 

경남 고성의 명산으로 알려진 무이산(武夷山,546m)은 불가(佛家)에서는 청량산(淸凉山)이라고도 하는데 고성읍 상리면 무선리에 위치하고 있다.무이산은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서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런 이유로 무이산(武夷山)이라 한다.수태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산보다는 문수암과 보현사 그리고 단장을 마친 약사여래 대불로 더 유명하다.문수암자 뒤에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쌓여있고 석벽 사이로 문수, 보현 두 보살상이 나타나 있어 문수단이라 이름지었다.관광객과 불교신도들은 암벽사이에 어렴풋이 보이는 문수보살상을 보기 위해 암벽에 붙어 눈을 대고 안간힘을 쓴다. 무이산과 수태산은 큰 노력을 안 들이고도 탁 트인 바다와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출처 : 일요서울i

 

( 쩝~...문수암 뒷편 문수보살님은 뵙질 못하고 왔구만..하기사 불심 딸랑딸랑한 우리 눈에 부처님이 쉬이 비칠리도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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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사진.. 무이산 정상 360도 산하의 일렁임..↓↓

[우인수인]님...감사합니다....꾸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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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림길 따라 탈래 걸음 폿폿한 편백숲을 내리다..

 

수태산으로 이어지는 산길 마다하고...반지르한 포장도로 따라 보현암 약사전 방향으로..

 

건네다 보이는 문수암과 무이산..

 

새단장한 약사전 일주문에는..

 

큼지막하게..[해동제일약사도량]..

 

약사여래대불님은 약사전 3층으로 꼬물꼬물 올라야..

 

염화시중( )...미소 알현할수 있고..

 

전망처에서 용머리 잡고 건너편 문수암 넌즈시..

 

조오기 앞 ...왼쪽 수태산에 이르는 길은..

 

주차구역 한켠에 객적은 이정표 하나 덜렁~..

 

보현암 눈에 차는 전망바위에서 느슨한 바닷바람 나눠 마시고 

 

놀멍 쉬멍 잔걸음 조자리면..

 

수태산 산길 마주치는 지점 조금 전..

 

문수암 툭툭한 모습 그대로 비춰내는 마당바위..

 

통신 중계탑 살짝 에돌아 서서..

 

올망졸망 바위덤 비껴앉은 샛길...아주 잠시만 더 헤아리면..

 

 아랫마을 척번정리로 이어지는 갈림길..( 마을 이름이..특이하기도 하고..살짝 어렵기도 하고..)

 

척번정(滌煩亭)리(里).. 씻을 척(滌), 번뇌 번(煩), 정자 정(亭)자를 따지었는데 보기에는 평평하지만 비가 오면 빗물이 깨끗이 씻은 듯이 없어지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며   신라시대 화랑들이 수행하던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여 수행하는 곳이라고..

 

 

아주 짧은 걸음..수태산 정상..

 

수태산(秀泰山,575m)..

옛 지명은 문수산(文殊山)으로 『여지도서』에는 문수산은 관아의 서쪽 25리에 있다. 감치산(甘峙山)에서 뻗어 나온다.고 하였다. 문수라는 지명은 688년(신라 신문왕 5)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문수암(文殊菴)에서 유래하였는데 문수암이 북쪽에 인접한 무이산(546m) 정상 남쪽에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무이동(武夷洞) 문수산(文洙山)을 기록하고 있어 무이산을 문수산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여지도서』에 문수산과 무이산을 따로 수록하였고, 『조선지도』, 『대동여지도』, 『동여도』 등에도 무이산과 그 남쪽에 문수산을 각각 표시하였다. 또한 『경상도읍지』를 살펴보면 문수암은 문수산(文殊山) 동쪽에 있다.고 수록하고, 문수산과 무이산을 지도에 각각 표시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수태산(洙泰山), 『조선지형도』에는 수태산(秀泰山)으로 기록하였다.  -한국지명유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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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사진 2) 수태산 정상에 비치는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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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 윤슬 아롱지는 전망바위 틈에서 물한모금...지나온 시간을 다독 거리고..

 

멀리 가야할 향로봉과 오른쪽 사천 와룡산 오틋한 몸매도 곁눈질 하며..

 

두 세군데 전망바위에서.. 깜짝 깜짝 일어서는..

 

묵직한 무릎..발목 아림을 스리슬쩍 감춰내고 

 

툭툭한 걸음으로 만나는 수태재...임도..

 

발걸음 실선은 간벌지 위 능선을 따라..

 

한소끔 발품을 더하다 지나온 수태산 언저리도 슬쩍..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푸르름과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의 앙상블을 주절대던..

 

415봉과..

 

355봉을 지나 주섬주섬 걸음 더하기를 두다보면..

 

여기가...학동치..

 

학동치는 단단한 포장임도를 따르면 건너섬에 무리가 없고..

 

학동저수지 잔잔한 물빛 곁눈질 하며 잘박잘박 임도를 이어가다..

 

길은 다시  발디딤 살풋 어지러운 오름 산길..

 

어라?..헤어졌던 임도가 여기 산 8부능선쯤까지 이어진 건가???

 

한번더 오름길 들숨 헤아려 내다..

 

건너편 꼿꼿한 소나무 푸른빛이 이채로운 마당바위 전망터에서 한풀..

 

기꺼이 다다른 소나무 전망바위에서는..

 

자란만을 거슬러 오는 초겨울 정취에 취해 하릴없이 두풀...세풀..

 

백암산 능선 꼭지쯤의 그 바위덤도 곱디 곱구만..앞선 옆지기 꼼꼼한 날개짓 얼른 담아내고..

 

남은 걸음.. 향로봉과 상두바위 능선을 등에 업은..

 

갈림 삼거리 마당암봉에서는 일행분 중 아무개님의 오카리나 낭낭한 음율과 함께..통통통

 

종종걸음 더해 쉼터 이정표 자리한 능선 삼거리를 스치듯 지나..

 

산의 형상이 향로를 닮았다는...향로봉 ( 고성 와룡산 )..

고성군과 사천군에 동명이산(同名異山)인 와룡산(臥龍山)이 이웃하고 있다.

고성군 와룡리를 감싸면서 자란만을 내려다보는 산줄기를 용이 누운 형상이라 예로부터 와룡산(臥龍山)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고문헌을 보면 와룡산을 지칭할 때 사천 와룡산과 고성 와룡산으로 구분하여 불러왔으나 어느 날 갑자기 고성 와룡산이 향로봉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조선총독부에서 1918년(대정 7년 3월 30일 발행)에 발행한 축척 5만분의 1 지도에 사천 와룡산과 와룡동은 그대로 두고 고성 와룡산을 향로봉으로 표기해 버려 지금까지 향로봉으로 불려오고 있다.  향로봉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돌기둥에 향로봉 579m라고 적혀 있다.  이곳에서는 자란만의 자란도, 대호섬, 와도, 문래섬, 나비섬, 괴암섬 등 점점이 뿌려진 섬들이 보이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해안의 절경은 멀리 사량도와 남해도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천상의 비경처럼 한폭의 그림...오른쪽은 무이산, 왼쪽으로 좌이산이 보이는데, 좌이산은 와룡산 향로봉 용의 왼쪽 귀에 해당하여 좌이산으로 불린다고..  펌자료)

 

 

복잡한 산이름 저울질 할새도 없이 산아래 가슴 탁 트이는 전망바위에 서면..

 

눈앞에는 가야할 상두바위와 비로봉 능선..

 

오른쪽으론 귀에 익을만큼 숱한 사연을 품은.. 사천 와룡산..

 

전망바위 꼼지락 놀음이 이채로웠나벼?..상두바위에 먼저 오르신 일행분이 잡아주신 모습..

 

자박자박..또렷한 산길 두런거려서..

 

편이성 보다는 세우신 분들의 애정이 더 공감가는 철교(애향교)를 넘어서..

 

모양새 만큼이나 이름이 울툴불퉁한 [상두바위]에서..

 

우리네 이유없는 흔들림은 아주 오랫동안..풀풀..

 

요렇게..

 

조렇게..

 

때론 까딱까딱도 서섬치 않으며..

 

오늘 거치지는 않은 백암산능선 눈길 한번 흘려주고..

 

지나온 향로봉이 이고선 초겨울 하늘빛에도 꼼꼼한 애정표현 한번 더..

 

혹여 남은 애증일랑 머리에 이고서라도 내려놓는 중임을 고해두고..

 

길옆 숲속..기우뚱 바위덤 하나..하마터면 그냥 지나칠뻔 했군..모양새가 요상..하기도 하여 이래저래 기웃거렸었는데..나중에 본 이정표상에 이바위가..[새바위]..

 

녹녹해진 걸음 그림자를 그리다 보면..나즈막한 비로봉 옆.. 전망바위..

 

이곳에서는 건너편 사천 와룡산의 꼽꼽한 속살마저 한눈에 베어들고..

 

비로봉을 달리 까마귀바위봉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파아란 하늘을 가득 메운 까마기떼...한무리..

 

가지 벌린 소나무 한그루 별시런 비로봉에서..

 

남은걸음 추스리며 또다시 꾸물꾸물..

 

이젠 더 올라야 할곳도 없고..더 무감각해진 무릎 눈치봐가며..살금살금 내려야 할터..

 

너들길을 따라 [동부보살]상이 어렴풋이 비친다는 전망바위에 서긴 했어도..

 

마음은 벌써..맴맴도는 기다림이 차마 외로워 보이기도 하는 [신선대] 바위덤까지...후다닥..

 

이정표상으로야 단순한 전망대로 표기된 곳이지만..

 

옴팡지고 야무진 바위덤에 베인 불경소리 하나만으로도..

 

이곳의 이름은 [신선대]가 분명..

 

한폭의 산수화에서처럼 단애에 낭낭걸린 고송의 품새는 그 이름에 베인 의미를 담담하게 덧칠해 내고..

 

남은 암벽 사면길 잘근잘근 나누어..

 

덤덤한 낙서암 이정표가 자리한 산길 날머리..

 

암자 입구 용머리에  뿔모양 겸 해서 꽂아둔 세월묵은 관솔은 ...익살스럽거나..한없이 푸근한 미소를 나누는 스님의 눈빛과 다름이 없음이고.. 

 

물고기 모양의 작은돌.. 풍경 고리 하나는 이 암자의 수수함과 고즈넉함을 옅보기에 한톨의 부족함이 없는

 

산기슭 천년고찰 운흥사의 부속암자인...[낙서암]..툇마루에 엉거주춤..

 

어느님의 블로그에서 보았던 낙서암(樂西庵) 이야기 하나 문득..

"스님..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동쪽을 이롭게 보고 이름을 짓는데..암자 이름에 서(西)자가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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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죽어서 갈곳은 동쪽이 아니라 서쪽..동쪽에서 떠오르는 해가 화려 하다면 서쪽으로 지는 해는 아름다움의 극치...이것은 극락이 동쪽이 아닌 서쪽에 있음을 의미하는 거라 생각되어 여기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보며 기도 하는 중입니다.."

 

잠잠해진 마음 토닥 거리며 날숨 한번 더 추스리면..

 

숙종18년 응화선사가 창건 했다는 운흥사의 부속암자 [천진암]에서는 

 

한껏 공손해진 손짓만 살포시 남겨만 두고..

 

타담타담...오늘 걸음의 마지막 굵은 점...운흥사..

 

생각했던 것보다 훨 다부진 사찰 규모와 곳곳에 깊이 스민 부처님 가피에 경이로움을 감추지 못하며..

 

경내 여기저기..낯선 산객의 몸짓을 풀어내기..

 

와룡산 향로봉 중턱에 자리한 천년고찰, 고성 운흥사(雲興寺)..

천년고찰 운흥사(雲興寺)는 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 와룡산(臥龍山) 자락의 향로봉 중턱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고려 충정왕 2년(1350년)에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이 절에 부속된 천진암(天眞庵)과 낙서암(樂西庵)은 조선 1692년(숙종 8년) 응화선사(應化禪師)가 창건한 암자이다.

임진왜란 때 이 지역 승병의 본거지로서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지휘하던 승군 6,000여 명이 왜적에 대항하여 싸운 것으로 유명하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수륙양면 작전을 꾀하기 위해 의논 차 세 번이나 왕림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사실은 운흥사에 소장되어 있는 임진전망축원유전(壬辰戰亡祝願遺傳)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당시 절의 규모는 부속암자인 천진암과 낙서암을 포함해 아홉 군데의 암자가 있었고 절 주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절터와 맷돌, 전방 1km 떨어진 언덕에 옛 고승들의 사리가 안장되어 있는 부도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병화로 소실된 것을 효종 2년 (1651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후기에는 화원양성소로도 유명하였는데 영조때 불화의 대가 김의겸스님 등을 배출하기도 한 도량이다. 이 절에는 영조 6년에 만들어진 괘불이 보존되어 있는데 우아하고 규모가 크다.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6존의 여래를 그리고 뒷면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친필로된 진언과 어언이 새겨져 있다.

그 외 다수 문화재급 유물이 일제 강점기 초기에 일본으로 반출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일본의 동경 근진미술관에 있는 운흥사 종이며, 현재 대웅전에 봉안된 괘불은 세 번이나 해로로 반출하려다 실패하였다. 대웅전은 1624년에 중건된 독특한 이조 양식 건물이며 내부에 그려진 불화와 장식은 화려하면서도 예술성이 높다. 이 지역 호국불교의 사찰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면면히 이어오면서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왜적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숨져간 호국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영산재를 숙종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매년 행사로서 치루고 있다.

영산재에는 모든 생명들이 큰 화해와 하나 됨을 위해서 상생(相生)을 향한 산사(山寺)음악회가 열린다.  영산재가 열리는  음력 2월 8일은 임진왜란 때 승병이 가장 많이 죽은 날이라고 한다. 펌자료)

 

세상에 통하는 진리는 두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의미의 이름표를 단..

 

운흥사 일주문 [불이문]을 지나 부처님 온화한 향기 가득했던 오늘 걸음을 단도리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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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내내..실타래처럼 헝클어졌던 상념더미가 조금이나마 동글동글하게 갈무리 되었음이고..살아오면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던 불심(佛心)은  내가슴 깊은곳에서 희미하게 꼬물꼬물...걸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