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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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곳에..

영천 은해사 7암자..

T-가라지 2018. 11. 6. 13:29





운부능선 암릉에서 팔공산 주능선 조망..


묘봉암 가는길..중앙암 전망대에서 중암암과 삼인암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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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7암자 순례산행 : 은해사(치일)주차장~치일교~치일지~수림장지~신일지.애련리갈림~627봉~사두바위~쉼터갈림~갈림~황토묘~560봉~전망암봉~능선갈림~운부암~백흥암갈림~갈림~철조망삼거리~백흥암~만년송.삼인암~능성재.중앙암갈림~극락굴.삼층석탑~중암암~갈림~중암암전망바위~묘봉암~갓바위주차장갈림1.2~갓바위전망바위~갈림~629봉~능선갈림~기기암~갈림~기기암전망바위~560봉~서운암~은해사~천왕문~치일주차장



영천 은해사 7암자  gpx track  :  2018-10-28 영천 은해사 7암자.gpx



※ 산행거리 : 약 17.5km...   산행시간 : 약 8시간 30분


고요함이  오롯이 앉은 가을가을한 길..여기 기웃...저기 기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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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가을 



          /  도   종  환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멈추어 있는

가을을 한 잎 두 잎 뽑아내며

 

저도 고요히 떨고 있는

바람의 손길을 보았어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꼭 한 번 이렇게

아름답게 불타는 날이 있다는 걸 알려 주며

 

천천히 고로쇠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만추의 불꽃을 보았어요

 

억새의 머릿결에 볼을 부비다

강물로 내려와 몸을 담그고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깔깔댈 때마다

튀어 오르는 햇살의 비늘을 만져 보았어요

 

알곡을 다 내주고 편안히 서로 몸을 베고 누운

볏짚과 그루터기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향기로운 목소리를 들었어요

 

가장 많은 것들과 헤어지면서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살며시 돌아눕는

산의 쿨럭이는 구릿빛 등을 보았어요

 

어쩌면 이런 가을 날

다시 오지 않으리란 예감에

까치발을 띠며 종종대는 저녁노을의

복숭아빛 볼을 보았어요

 

깊은 가을 마애불의 흔적을 쫓아 휘어져 내려가다

바위 속으로 스미는 가을 햇살을 따라가며

 

그대는 어느 산기슭 어느 벼랑에서

또 혼자 깊어가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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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얼마 지나지 않아..가을물빛 일렁이는 치일지에서 봇짐 다시 동여메고..



종종 거리며..가을속으로..




막 땅속에서 머리를 내민 이무기 모양새라서...울끼리 사두바위라 명명도 해보고..











운부능선 끝지점 쯤 나타나는 가슴 탁..트이는 전망암릉..





완전 탄탄한 발디딤 소나무..






알록달록에 눈을 맞추면 뭐 그리 바쁠게 있냐 이거지..


운부능선에서 빠져 내리면 금강산 마하연과 더불어 한반도내 가장 길한 자리에 위치 했다는 ..



운부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에 딸린 8곳의 산내 암자 중 하나로, 유서 깊은 참선도량이다. 711년(신라 성덕왕 10)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절을 세울 때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났다 하여 운부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고려시대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이후 중건하여 관음기도 도량으로 전승되어 왔다. 1860년(철종 11)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옹허스님과 침운스님이 중건하였고, 1900년에 보화루()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조계종의 선맥을 이어온 운부암은 예로부터 고승대덕들과 선지식()들이 두루 거쳐간 수행처로 유명하다.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했던 경허스님을 비롯하여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동산스님, 운봉스님, 성철스님 등이 운부암에서 수도하였다.

펌 ) [네이버 지식백과] 운부암 



보화루..

누각인 보화루 역시 1862년 원통전과 함께 중건되었다는 기록이‘운부암중건기’와 <조선사찰사료>에 나와 있는데 현존하는 건물은 1900년에 중건된 것이다. 보화루라는 이름은 화엄학() 또는 화엄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은해사와 암자 백흥암에도 보화루라는 누각이 있다. 내부에 운부암의 역사를 기록한‘운부암중건기’,‘장등시주문’,‘선사백초당성우지진찬’,‘팔봉산운부암중수기’ 등 여러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펌)..[네이버 지식백과] 운부암 [雲浮庵]



불이문..

볼 수 없으나 남아있는 그들의 이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의 하루를 용서해줬고,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시간은 값있게 흘렀다. 석탑처럼 흔들리지 않고 마당을 걸었던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돌계단을 내려왔다.

석탑처럼 흔들리지 않고 싶다면 운부암에 가볼 일이다. 불러보는 것만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는 이름들이 거기 있고, 서성이는 것만으로 앞서간 발자국을 따라갈 수 있는 운부난야의 마당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해는 서쪽 산을 넘고 연못 위에 서있는 달마 스님의 그림자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간다.


펌)..박재완 기자의 사찰풍경-9. 영천 운부암(雲浮庵)
해는 서쪽 산을 넘고 달마의 그림자는 동쪽으로 간다..中


 파란 하늘을 품은 연못 위에는 따뜻하고 오래된 눈동자의 달마 스님이 서 있고..




개울을 건너..


태실봉능선의 운부고개를  살랑살랑 오르면..


정갈한 뒷모습을 보이는


백흥암..

/ 나무 본연의 빛깔과


바닥의 정갈한 흙이

모노톤의 세계에 빨려 들어왔다

 

오래전 시간을 칼로 저미어

처마에 너른 듯

시간이 멈춰선 공간

 

빛바랜 흑백사진

그 안에 서 있다

움직이는 건 손끝에 닺는 바람뿐. /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869년) 암자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 백지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됐다. 그 후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화상이 현재의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은해사에서 팔공산에 이르는 산세가 용이 승천하는 기세이므로 백흥암 너머 운부암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더욱 많이 일어나 용의 승천을 돕도록 한다는 뜻으로 일백 백(), 흥할 흥(), 백흥암이라 이름 지었다.

펌)..[네이버 지식백과] 백흥암 -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운 (한국의 미 산책 )




다시 태실봉 능선과 만나는 산길..타박타박..




잘 정돈된 데크계단길 살금 올라서서..








먼저 만년송 배알하고..


만년송..


건들바위 위에 올라 저쪽...코끼리능선 쯤..


옆지기는 쏙~..잘도 빠져 나가더만..


애혀~...난 숨기지 못한 뱃살이 문제로구먼..ㅠㅠ...틈새바위..


옛얘기 도란 거리며 한소끔 두소끔..세월 헤아리기 딱 좋은 곳..


삼인암..


옛얘기.. 쌀구멍 이야기

“어유, 무슨 눈이 이렇게 푸짐하게도 내린담.”
예년에 볼 수 없었던 큰 눈이었다. 팔공산 주위가 온통 두터운 눈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렇게 큰 눈이 오면 모든 산길도 막혀버린다. 찾아오는 신도도 없다. 원주 스님은 눈을 치울 생각도 않고 불경만 외우며 천지의 길들을 막아버린 눈이 오히려 정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쌀독이 비었다. 당장 끼니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방이 눈이라 움직일 수 없으니, 탁발은 생각도 못했다. 아쉬운 대로 칡뿌리라도 캐어 먹으려 해도 사방이 눈에 덮여 불가능했다. 도리 없이 굶어야 했다.
“산간의 수행에 배고픈 것이 장애가 될 수야 없지.”
원주 스님은 계곡의 찬물을 마시고, 눈 위에 드러난 나무의 줄기를 씹으면서 정진을 더욱 가열하게 해나갔다.
어느 날 저녁, 포행을 하기 위해 법당 밖을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호랑이 한 마리가 마당에 척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손을 휘저으며 가라고 해도 호랑이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 스님이 겁을 먹고 뒷걸음질치자, 호랑이는 스님의 옷자락을 물고 당겼다. 마치 따라오라는 것 같았다. 호랑이를 따라갔다.
법당 동쪽으로 조금 가니 희한하게도 그곳에는 눈이 쌓여 있지 않았다. 달이 밝아 사방이 대낮처럼 밝았다. 호랑이는 한 곳을 가리키고는 숲으로 사라져버렸다. 묘한 기분으로 원주 스님은 호랑이가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갔다. 큰 바위 앞에 뭔가가 보였다. 쌀이었다. 딱 하루 먹을 분량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자세히 보니, 쌀은 손가락 크기로 난 바위의 구멍에서 흘러나온 듯했다. 원주 스님은 호랑이가 간 쪽으로 합장을 했다. 쌀이 있는 바위에도 합장을 했다. 다음 날 그곳에 가니 역시 구멍에서 하루 분의 쌀이 흘러나와 있었다. 매일 그랬다.
봄이 왔다. 하루는 남루한 차림의 객승이 찾아왔다. 식량이 매일 하루분밖에 안 되지만, 나누어 먹으면 되겠지 하고 바위 있는 데 가니 쌀구멍에서는 희안하게도 딱 두 사람분의 쌀이 나와 있었다. 사람 수에 맞추어 쌀이 나오는 것이었다.
객승이 보고는 욕심을 냈다.
“이 절을 뺏으면 평생 먹을 걱정은 없겠네.”
그는 산적들을 찾아가 그들을 꼬드겼다. 산적들은 원주를 묶어 목을 치려 했다. 순간 하늘에 번개가 쳤다. 객승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 집채만 한 바위덩이가 산적들을 내리덮을 듯 공중으로 떴다. 원주 스님은 두 손으로 바위를 받아 서너 칸 뒤로 물러 놓았다. 산적들은 벌벌 떨며 참회를 했다. 모두 불제자가 됐다.
그 후 그들 중 하나가 원주 스님이 왜 힘이 센지 궁금해 뒤를 밟았다. 원주 스님은 석굴을 지나서 200m 서쪽에 위치한 약수터에 물을 마시러 갔다. “아하, 저것이 힘의 원천이구나”라고 생각한 그는 그 물을 마셨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힘이 솟아났다. 절 밖을 지나가는 행인을 때려죽였다. 점점 못된 짓만 했다. 그리고 바위 구멍을 더 크게 만들면 쌀이 더 많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막대기로 쑤시기 시작했다.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물줄기가 쏟아져 나와 그의 눈을 쳐 죽였다. 그 후 그 구멍에서는 쌀 대신 물만 나왔다. 약수터는 욕심의 근원이 된다 하여 묻어버렸다고 한다.
원주 스님이 받아서 내려놓은 그 바위가 삼인암(三印庵)이라 한다. 중앙암 뒤편에 있다. 바위에는 ‘三印庵’이라고 쓴 글씨가 남아있다.


펌)..이야기로 풀어낸 永川史 .6] 중암암과 4色 스토리


신선암..



극락굴..흠..



삼층석탑..




중암암..가는길..


중암암..


옛이야기..1. 김유신의 수련처
김유신이 팔공산에 들어온 게 열일곱 살 때였다. 15세에 국선이 되어 수많은 낭도를 거느리는 위엄이 이미 아주 넘쳤다. 고구려와 백제, 말갈 등이 국경을 침범하는 데 분노한 그는 힘을 길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산을 찾은 것이다. 중악(팔공산)은 나라에서 해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라의 5악으로 꼽히는 신령스러운 산. 그 품이 넓고 골이 깊었다. 그는 우선 목욕재계하고 하늘에다 맹세를 했다.
“적이 무도하여 짐승처럼 우리의 영역을 소란케 하니, 편안한 해가 거의 없습니다. 미약하나 나라의 환란을 없애는 데 기꺼이 힘을 모으려는 뜻을 세웁니다. 하늘이여, 도와주십시오.”
기도를 한 지 4일이 되는 날 갈옷을 입은 한 노인이 찾아왔다.
“여기는 독충과 맹수가 많은 곳인데, 귀한 소년이 이 위험한 곳에 혼자 기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어르신은 어디에서 오신 뉘시온지요?”
“나는 난승에 불과할 뿐. 주거지도 없이 떠도는 몸이네.”
노인의 비범한 용모에 김유신은 말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 수련을 하는 중입니다. 제게 비의의 방술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런가? 어린 나이에 큰 뜻을 품은 게 장하군.”
노인은 김유신에게 비법을 전수했다.
큰 바위들이 중첩한 산의 동쪽 비탈은 바위의 기운이 유난히 강한 곳이었다. 거대한 암벽에서는 샘물이 흘러나왔다. 감로처럼 달고 시원했다. 깎아지른 절벽의 뒤쪽에는 소나무들이 솟았다. 그 아래 약간의 평지가 있는데 거대한 바위가 깔렸고, 주위에는 병풍을 치듯 길쭉한 형태의 입석이 도열해 있었다. 거기에서 수련했다. 바위들이 그를 둘러싸고 호위하듯 했다. 정신을 모으고, 기합을 넣었다. 젊은 기운이 뿜어내는 소리가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노인은 서둘러 비법을 전한 후 말했다.
“이 법은 의롭게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을 면치 못하리라.”
노인은 바로 산을 내려갔다. 뒤를 쫓았으나 문득 사라져 간 곳을 찾지 못했다. 바라보니 공중에는 오색이 찬란한 빛이 감돌았다.
김유신은 더욱 정진했다. 때로 산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며 천하를 통합하려는 야망을 다지기도 했다. 그가 수련했던 곳은 나중에 절터가 됐다. 중암암. 그곳의 샘은 ‘장군수’라 불렸다.

2. 원효, 화엄삼매에 들다
원효 역시 중악을 사랑했다. 자주 찾아와 골골이 서린 영험한 기운을 쬈다.
화엄경을 주로 읽었다.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이 꽤 있었다. 경전 공부는 일반 공부와 달라 알음알이로만 접근해서는 안 됨을 깨달았다. 철저한 수행을 병행해야만 했다. 마침 중악에 좋은 수행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거대한 바위들이 중첩해 있는 가운데에 사람이 들어앉을 만한 굴이 있다는 게다.
“그 굴속에서 정진하며 공부를 해야겠다.”
원효는 중악을 샅샅이 더듬어 그곳을 찾아냈다. 바위들이 층층을 이루고, 사람이 겨우 한 사람 들어갈 만한 구멍을 지나 굴을 발견했다. 굴속에서 밤낮없이 책을 파고들었다. 파고들수록 더욱 깊어지는 게 화엄경의 세계였다. 모든 존재는 불성을 가지고 있고, 모든 현상은 다른 현상의 원인이 되어 상호의존하며, 궁극적으로 모든 존재가 다 그대로 부처라는 오묘한 가르침이 가슴에 와 닿았다. 차츰 신명이 나면서 저도 모르게 화엄경 약찬게를 외웠다. 갑자기 깊고 그윽한 정적 속에 든 듯했다. 마음과 몸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화엄삼매에 든 것이다 그의 몸에서 불꽃이 일었다. 바위가 갈라지면서 문득 모든 의문이 환히 풀렸다.
그는 환희심으로 붓을 들었다. 그렇게 화엄경론을 완성했다.


3. 심지왕사, 불국토 꿈꾸다
심지화상은 중악을 뒤지며 다녔다. 중첩된 바위 길을 따르다 사람 하나 드나들기에 딱 좋은 돌구멍 앞에 닿았다. 구멍 밖이 환했다. 돌구멍은 대문처럼 버티고 서서 어서 통과하라고 하는 듯했다.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통과하니, 아찔한 낭떠러지가 나타나고 앞이 확 트인다. 거대한 바위 사이에 약간 평지가 있어서 그 자리에 쉬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참으로 기이한 기운이 넘치는 곳이군.”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수련을 했고, 원효가 공부를 했다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신을 모으고, 수행을 할 만한 곳이 분명했다.
“이곳에다 절을 세워야겠다.”
심지는 마음을 굳혔다. 동화사를 창건한 후 그는 팔공산의 정기를 한껏 받아들였다. 신라 때부터 중악으로 불려온 신령스러운 산인 만큼 그는 팔공산을 불국토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산을 뒤지면서 절 자리를 찾아다녔다. 오늘 그중 한 자리를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은자가 숨어 지낼 만한 곳으로 딱 맞았다. 좁은 돌구멍을 지나지 않으면 결코 도달하지 못할 만큼 밖에서 보면 절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좁은 돌구멍은 새로운 세계에 이르는 관문처럼 느껴졌다.
심지는 바위틈에다 절을 지었다. 중암암이었다. 바위에 딱 붙여 지어 여유가 없었지만 제대로 숨어서 지낼 만한 곳으로는 이만한 데가 없을 듯 보였다. 운치도 있었다. 마당은 아주 좁으나 사람이 서성일 만하고, 그 아래는 아찔한 절벽이어서 긴장감을 주기도 했다. 자그마한 법당과 산신각, 그리고 요사채가 전부지만, 언제나 자신을 백척간두에 세워야 하는 수행자의 자리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중악에 또 한 군데 명당자리가 들어섰구나.”
심지는 흡족하여 자주 들러서 마음을 가라 앉히곤 했다.
지금도 돌구멍으로 들어서면 감추었다 내놓은 듯 작은 암자가 벼랑에 서 있어서 사람들은 ‘돌구무(돌구멍)절’이라 한다.


펌)..이야기로 풀어낸 永川史 .6] 중암암과 4色 스토리-영남일보







가을가을.....그리고 산사..







묘봉암 가는길..중암맘 전망바위..


우리나라 3대 기암(奇庵- 관악산연주대, 금오산 약사암. 팔공산 중암암)이라 불릴만 하군..


묘봉암..


묘봉암은 833년(흥덕왕 8)에 심지(心地)왕사께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오랫동안 관음기도처와 수행처로 전승되어 오다가 1485년(성종 16)에 죽청(竹淸)과 의찬(義贊)이 중창하였고 1780년(정조 4)에 다시 중창하였으며, 최근에 6·25사변 당시 폐사된 것을 법운(法雲)스님께서 중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관음기도와 신신기도처로 유명하고 과거에는 나라에 큰일이 있거나 큰절에 행사가 있을 때에는 은해사 대중스님들이 모두 올라오셔서 산신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지며, 산령각 옆 석간수는 불치의 병도 낳게한다는 신비의 약수로 유명하다.
원통전은 과거 석굴에서 기도를 해왔던 곳으로 석굴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높이가 매우 높아 정사각형의 모양에 가까운데 이는 내부에 큰 돌이 뻗어 있어 (굳게 잠김 문 덕에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그 아래에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하고, 왼쪽 위에 2층을 만들어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기 때문이다.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기도 하다


펌)..은해사 홈피



다시 가을빛만 남은 산길..더듬어 으르면..



길은 은해능선과 조우하고..


건너편 갓바위(관봉)과 용주사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에서 한숨두숨..놀다가..



629봉은 발도장 달랑..




기기암으로 내리는 길은 낙엽이 길을 지워 살짝 까칠..


기기암..


기기암은 애장왕때 국사로 봉안된 정수(正秀)스님이 816년(헌덕왕 8)에 창건하였고 1546년에는 쾌선스님이 중건하여 안흥사(安興寺)라 하였으며 60여명의 승려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 뒤 1823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우로는 요사와 법당을 겸한 건물 1동이 있습니다. 선방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에 팔작지붕 건물로 근래에 조성되었습니다.
기기암은 '신기사바 심기극락(身寄娑婆 心寄極樂)'이라하여 '몸은 비록 사바세계에 있으나 마음은 극락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편안한 수행처이다. 현재 선방에는 비구스님들이 참선 정진 중이다.


펌)..은해사 홈피



기기암에서 다시 주능선으로 올라 전망바위에 걸터앉으면..


먼발치 다른 그림 기기암...


벌써 어둑어둑 해지는군..흩뿌리는 가을비에 잠깬 멧도야지 선생이 놀라 달음박질 치던 능선길...후다닥 내려서..


서운암..


서운암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전해지는 사찰 기록이 전혀 없다. 폐사로 남아 있었으나 6.25이후 중건하여 한 분의 스님이 거처하고 있었다. 산령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자그마한 전각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창호는 빗살문살로 짜여져 있으며 안에는 산신상(山神像)만을 봉안하고 있다.
산신은 민간신앙으로 호랑이의 변화신인 산신(山神)을 숭배하던 것을 불교에서 흡수한 경우이다. 산신각은 보통 산의 악귀를 누르기 위하여 가람의 가장 위쪽에 위치한다.
정면 4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서운암의 스님들이 머무시는 요사이다. 정면 가운데 두 칸에는 곁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펌)..은해사홈피




세상 고요함이 그대로  내려앉은..


은해사..




천년 고찰 팔공산 은해사..

은해사는 조선 31본산, 경북 5대 본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그리고 교구 본사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 개가 있고 말사 숫자가 50여 개에 이르고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한다. 신라의 진표율사는 

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 (一道銀色世界 如海重重)
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은해사는 현재 말사 39개소, 포교당 5개소, 부속암자 8개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이다.
1943년까지만 하더라도 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펌)..은해사 홈피..


사대천왕 눈빛 서늘한 천왕문을 지나며...넉넉한 가을 걸음  은해사 7암자길...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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